나훈아 부인들, 이혼재판 결과
<이숙희 나훈아, 나훈아 김지미, 나훈아 정수경>
<나훈아 전 부인들>
❐ 정수경 : 1985년–2016년
❐ 김지미 : 1976년–1982년
❐ 이숙희 : 1973년–1975년
<나훈아 프로필>
나훈아 본명 : 최홍기
나훈아 직업 : 가수 나훈아 이미지
나훈아 나이 : 1947년 2월 11일
나훈아 학력 : 서라벌예술고등학교
나훈아 데뷔 : 1966년 노래 '천리길'
나훈아 수상 : 2007년 제5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가수부문, 2001년 MBC 명예의 전당 가수부문, 1996년 제3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상
나훈아 부인 : 정수경(1985~2016), 김지미(1976~1982), 이숙희(1973~1975)
나훈아 자녀 : 1남 1녀
<나훈아 정수경, 아들-딸>
가수 나훈아는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했다. 나훈아의 결혼도 이혼도 항상 큰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나훈아의 부인들도 세간의 이목을 받아왔었다.
가수로서 완벽했던 나훈아는 완벽하지 못한 사생활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75년 첫 번째 아내, 이숙희씨와 이혼한 그는 76년 당시 유명했던 배우 김지미와 결혼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공식적으로 3번의 결혼을 했는데 85년 김지미와의 이혼 이후, 후배가수였던 정수경씨와 결혼했지만 현재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다. 2007년 예정됐던 공연 취소를 끝으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훈아 첫번째 부인 이숙희>
<나훈아 전 부인 이숙희 사촌, 배우 고은아>
그러던 그가 2008년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해 ‘신체절단설’을 부인했고 그것이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간혹 그의 근황이 들리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최근 한 종편방송에 출연한 나훈아의 지인은 “나훈아가 양평의 실버타운 같은 비싼 요양원에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나훈아와 세 번째 아내인 정수경씨가 제기한 이혼소송으로 나훈아는 근 10년간 근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좀처럼 근황을 알수 없었던 나훈아에 대한 팬들의 갈망과 궁금증은 커져만 갔었다.
<신체절단설 부인 기자회견>
그런데, 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70)가 17일 새 음반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매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가수 나훈아는 자타공인 한국 가요계의 큰 별이다. 가희 트로트계의 황제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남자 나훈아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나훈아는 전성기 시절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당대 최고 스타 김지미와의 결혼하며 많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었다.
통 큰 남자 나훈아
톱스타 김지미에 전 재산 넘겨 “여자는 돈 없으면 못 살아”
나훈아는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 73년 배우 고은아의 4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 하지만, 나훈아와 이숙희는 결혼 3년만인 76년 이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나훈아는 71년부터 7세 연상인 배우 김지미와 사귀고 있었고 76년 이혼을 하고 몇 개월만에 나훈아는 김지미와 전격 결혼을 선언해 온국민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김지미는 세 번째결혼이었다. 나훈아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훈아와 김지미는 6년만인 1982년 파경을 맞았다.
당시 나훈아는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겨 통 큰 남자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나훈아는 김지미와 이혼한 지 1년 뒤인 1983년에는 '아빠가 됐다'는 보도로 세상을 또 한 번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후 1976년《이름모를 그 사람》을 부른 후배 가수 정수경씨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훈아와 정수경의 30년 결혼생활도 2016년 이혼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훈아와 정수경 씨는 1983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1993년부터 자녀교육 문제로 떨어져 생활해 왔다고 한다.
정수경은 나훈아의 잦은 잠적으로 인한 생활고와 불륜 등을 이유로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이와 달리 나훈아는 “연락이 안 된 건 사실이지만 부양의 의무는 꾸준히 해 왔다”고 반박하며 이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치열했던 법적 공방 끝에 나훈아는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정수경에게 위자료 12억 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과 함께 최종 이혼 선고를 받았다.
나훈아 정수경 이혼판결
5년 공방, 나훈아, 부인에게 12억1000만원 지급 판결
가수 나훈아와 정수경의 길었던 이혼 소송이 2016년 끝났다. 2016년 나훈아의 아내 정 씨가 나훈아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의 최종 선고가 진행됐다. 이날 재판부는 양측의 이혼을 선고하며 “피고는 원고에게 12억 1000만원을 지급하며 이와 함께 지원 손해금 역시 전달한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날 나훈아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정수경씨는 변호인과 모습을 드러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정수경 씨는 2011년 8월 “혼인 파탄의 원인이 나훈아의 부정행위와 악의적인 유기에 있다”며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정수경 씨는 나훈아가 연락을 두절한 채 불륜을 저질렀고, 부양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훈아는 혼인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2013년 대법원에서 정수경 씨의 소송을 한 차례 기각했다. 그러나 정수경 씨는 2014년 10월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상 이혼 절차에 들어간 나훈아와 정 씨는 수차례 조정기일을 거친 끝에 이날 이혼을 하게 됐다. 이로써 두 사람은 5년간의 길었던 법정공방을 끝맺었다.
가수 나훈아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나훈아는 1966년 데뷔해 ‘울긴 왜 울어’, ‘머나먼 고향’, ‘사랑은 눈물의 씨앗’, ‘고향역’, ‘잡초’, ‘갈무리’, ‘무시로’ 등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나훈아는 지난 1966년 '천리길'이란 노래로 데뷔해 토속적인 음색과 다이내믹한 창법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나훈아는 투박하지만 정열적이며 야성적인 무대 매너로 여고생부터 중년팬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더욱이, 트로트가수로는 드물게 싱어송 라이터로서 능력을 보여줬으며 '갈무리' '무시로' '잡초' '영영' 등 국민가요를 탄생시키는 히트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동안 나훈아는 약 200여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발표곡만 2,800여곡에 이른다. 이중 800여곡이 자작곡이란 사실은 실로 엄천난 것이다.
특히 민요, 팝송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타고난 천의 목소리와 특유의 음악적 감성으로 온국민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했었다. 1970년대에는 가수 남진과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며 한국 가요계에 이슈 메이커로 우뚝 서기도 했었다.
<신체절단설 부인 기자회견>
<나훈아 기자회견>
지난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칩거에 들어간 나훈아는 이후 건강이상설, 일본 폭력조직에 의한 신체훼손설, 유명 여배우 K씨와의 스캔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이와 관련 나훈아는 2008년 1월 기자회견을 연 뒤 직접 해명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며 자신에게 오명을 씌운 언론을 질타했다. 특히 일본 폭력조직에 의한 신체 중요부위 절단설과 관련해 나훈아는 단상에 올라 바지 지퍼를 내리는 깜짝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바지를 내리진 않았다.
이어 나훈아는 여배우 K씨와의 스캔들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뒤 K씨로 지목된 배우 김혜수, 김선아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나훈아는 "난 어차피 엉망진창이고, 여러분 손에 찢어져 아무것도 없다"며 "그런데 마지막으로 여러분, 김혜수, 김선아 우리 후배 처자들, 바로잡아 달라. 꼭 바로잡아 주십시요. 바로 잡아주셔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그 당시 여배우 K씨의 정체와 관련해 일본 폭력조직 보스급의 연인이며 나훈아를 매우 좋아한다는 소문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일본 폭력조직이 나훈아의 중요 부위를 절단했다는 루머가 양산됐다.
또한 K씨가 '가슴이 큰 글래머 배우'라는 말이 나오면서 배우 김혜수와 김선아가 지목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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